시부모님이 싫어서 시댁에 가기 싫은 걸까요? 상담실에서 수십 명의 며느리를 만나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나쁜 분들은 아니에요. 오히려 잘해주시려고 하세요. 그런데 명절이 다가오면 마음이 무거워져요." 이 말이 반복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시부모님을 싫어하는 게 아닌데 왜 역할 차이가 생기나일반적으로 시댁 갈등은 감정의 문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상담 현장에서 실제로 만나 보면 조금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핵심은 역할입니다. 여기서 역할이란, 특정 관계 안에서 기대되는 행동 양식과 심리적 포지션을 말합니다. 친정에 가면 며느리는 딸입니다. 실수해도 괜찮고, 피곤하면 누워도 됩니다. 말을 적게 해..
부모님 전화가 반갑지 않다는 말, 입 밖에 꺼내기 참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 있는데 화면에 "엄마", "아빠"라는 이름이 뜨는 순간 왜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까요. 저는 상담 현장에서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이 불효나 냉담함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같은 말, 다른 감정 — 안부 전화가 부담이 되는 이유부모님이 전화를 걸어올 때와 자녀가 그 전화를 받을 때, 두 사람이 경험하는 감정은 놀랍도록 다릅니다. 부모님은 전화를 끊고 나서 "목소리라도 들으니 좋네"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자녀는 같은 통화를 마치고도 마음 한편이 가볍지 않습니다. 죄송한 마음과 부담스러운 마음이 동시에 남습니다. 저도 상담장면에서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꽤 오래동안 멍했습..
저녁 식사가 끝나고 아내가 말을 꺼냅니다. 아이 이야기, 동네 이야기, 오늘 만난 사람 이야기. 그런데 남편의 대답은 짧습니다. "그래?" "그랬구나." 대화는 거기서 멈춥니다. 상담실에서 이 장면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성격 차이라고 생각했지만, 30년 가까이 부부와 가족을 만나다 보니 이건 사랑의 문제가 아닐 때가 훨씬 많았습니다. 집에 오면 에너지가 고갈된 이유직장에서는 웃습니다. 고객에게 친절하고, 회의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친구들과 농담도 잘합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말이 줄어들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가장 무뚝뚝해집니다. 배우자는 그걸 보며 묻습니다. "밖에서는 그렇게 잘하면서 왜 집에서는 그래?" 직접 겪어보니 이 질문에는 전제가 하나 깔려 있었습니다. 에너..
아이들이 모두 독립하고 나서, 처음 며칠은 조용한 게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조용함이 길어지면서 묘한 어색함이 찾아왔습니다. 거실에서 나란히 TV를 보는데, 뭔가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 순간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우리가 원래 이랬나?" 싶었거든요. 결혼 초에 분명히 할 말이 넘쳤던 사람들인데,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 이런 어색함이 생겼다는 게 처음에는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상담 현장에서 부부들을 만나온 경험으로 보면, 이 어색함은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빈 둥지가 되면 왜 갑자기 어색해지는가"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빈 둥지 증후군이란 자녀가 독립한 뒤 부모, 특히 주 양육자가 느끼는 상실감..
"어떤 상담 기법을 쓰셨나요?" 30년 가까이 상담 현장에 있으면서 이 질문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래도록 기억하는 한 사례의 답은, 기법이 아니었습니다. 상담도 아니었고, 프로그램도 아니었습니다. 매일 밤 대문 앞에 서 있던 어머니 한 사람이었습니다. 헬리콥터 부모의 통제가 아닌 기다림의 호버링(Hovering)일반적으로 헬리콥터 부모라고 하면 자녀 주변을 떠나지 않으며 개입하고 통제하는 부모를 떠올립니다. 여기서 헬리콥터 부모란, 헬리콥터가 한 지점을 맴돌듯 자녀의 학교생활부터 친구 관계, 취업까지 끊임없이 관여하는 양육 방식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전문가들은 자녀 수 감소, 높아진 교육 수준, 치열한 경쟁 사회 등을 그 원인으로 꼽습니다. 문제는 이 방식이 자녀에게 통제로 느껴질..
솔직히 저는 처음에 이 질문이 그렇게 흔한 질문인 줄 몰랐습니다. 상담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말을 중년 부부에게서 생각보다 훨씬 자주 듣게 된다는 걸요. 싸우는 것도 아니고, 미워하는 것도 아닌데 남편은 거실, 아내는 안방으로 각자 들어가는 생활. 30년 가까이 상담 현장에서 부부를 만나온 저로서는 이 패턴이 낯설지 않습니다. 정서적 거리를 멀게 하는 익숙함의 착각에서 벗어나라직접 겪어보니, 관계가 멀어지는 이유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갈등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보면 싸움보다 훨씬 더 흔한 원인이 있습니다. 바로 익숙함입니다. 여기서 익숙함이란 단순히 오래 알고 지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는 저 사람을 다 알아"라는 착각이 자리 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