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모두 독립하고 나서, 처음 며칠은 조용한 게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조용함이 길어지면서 묘한 어색함이 찾아왔습니다. 거실에서 나란히 TV를 보는데, 뭔가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 순간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우리가 원래 이랬나?" 싶었거든요. 결혼 초에 분명히 할 말이 넘쳤던 사람들인데,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 이런 어색함이 생겼다는 게 처음에는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상담 현장에서 부부들을 만나온 경험으로 보면, 이 어색함은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빈 둥지가 되면 왜 갑자기 어색해지는가"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빈 둥지 증후군이란 자녀가 독립한 뒤 부모, 특히 주 양육자가 느끼는 상실감..
"어떤 상담 기법을 쓰셨나요?" 30년 가까이 상담 현장에 있으면서 이 질문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래도록 기억하는 한 사례의 답은, 기법이 아니었습니다. 상담도 아니었고, 프로그램도 아니었습니다. 매일 밤 대문 앞에 서 있던 어머니 한 사람이었습니다. 헬리콥터 부모가 아닌 다른 방식의 맴돌기일반적으로 헬리콥터 부모라고 하면 자녀 주변을 떠나지 않으며 개입하고 통제하는 부모를 떠올립니다. 여기서 헬리콥터 부모란, 헬리콥터가 한 지점을 맴돌듯 자녀의 학교생활부터 친구 관계, 취업까지 끊임없이 관여하는 양육 방식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전문가들은 자녀 수 감소, 높아진 교육 수준, 치열한 경쟁 사회 등을 그 원인으로 꼽습니다. 문제는 이 방식이 자녀에게 통제로 느껴질 때입니다. 사랑에서 ..
솔직히 저는 처음에 이 질문이 그렇게 흔한 질문인 줄 몰랐습니다. 상담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말을 중년 부부에게서 생각보다 훨씬 자주 듣게 된다는 걸요. 싸우는 것도 아니고, 미워하는 것도 아닌데 남편은 거실, 아내는 안방으로 각자 들어가는 생활. 30년 가까이 상담 현장에서 부부를 만나온 저로서는 이 패턴이 낯설지 않습니다. 익숙함이 관계를 멈추게 한다직접 겪어보니, 관계가 멀어지는 이유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갈등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보면 싸움보다 훨씬 더 흔한 원인이 있습니다. 바로 익숙함입니다. 여기서 익숙함이란 단순히 오래 알고 지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는 저 사람을 다 알아"라는 착각이 자리 잡히는 순간, 질문이 멈추..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왜 더 외로울까요? 처음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저도 잠깐 멈칫했습니다. 혼자가 아닌데 외롭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30년 가까이 상담 현장에서 만난 노후를 보내고 있는 부부를 보니, 이 역설이 사실은 은퇴 후 가장 흔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은퇴를 기다리며 "이제 둘이 좋은 시간 보내자"고 기대하지만, 막상 시작되면 "같은 집에 있는데 각자 사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은퇴와 함께 사라지는 공통의 목적은퇴 전에도 부부는 함께 살았습니다. 같은 집에서 잠들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관계가 유지된 건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라, 함께 바라보는 방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공통의 목적이란 부부가 의식하든 안 하든 자연스럽게 공유하던 ..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이 말이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면, 지금 부모로서 중요한 신호를 하나 놓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30년 가까이 상담 현장에서 수많은 부모와 아이를 만나왔는데, 가장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이의 행동은 분명히 보이는데, 그 행동의 이유는 끝내 묻지 않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TV 앞 자리 — 시력 문제를 몰랐을 때제가 상담실에서 만난 한 부모의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TV를 볼 때마다 화면 바로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부모는 처음엔 웃으며 말했고, 두 번째는 단호하게, 세 번째쯤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설명도 했고, 주의도 줬고, 아이도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부모가 내린 결론은 "말을 안 듣는 아이"였습니다. 고집이 세..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부부들 중 상당수가 "많이 싸워서"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혀 달랐습니다. 싸우지 않는데 힘들다는 부부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대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침묵이 쌓이는 순간,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밥 먹어." "다녀올게." "약 챙겨 먹어." 30년 가까이 상담 현장에서 만난 중년 이상의 부부들이 하루 동안 주고받는 말이 이 정도였습니다.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말은 합니다.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묻는 대화는 거의 없습니다. 한때는 밤새 이야기해도 시간이 부족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연애할 때는 꿈을 이야기했고, 결혼 후에는 미래를 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