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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왜 더 외로울까요? 처음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저도 잠깐 멈칫했습니다. 혼자가 아닌데 외롭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30년 가까이 상담 현장에서 만난 노후를 보내고 있는 부부를 보니, 이 역설이 사실은 은퇴 후 가장 흔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은퇴를 기다리며 "이제 둘이 좋은 시간 보내자"고 기대하지만, 막상 시작되면 "같은 집에 있는데 각자 사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은퇴와 함께 사라지는 공통의 목적


    은퇴 전에도 부부는 함께 살았습니다. 같은 집에서 잠들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관계가 유지된 건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라, 함께 바라보는 방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공통의 목적이란 부부가 의식하든 안 하든 자연스럽게 공유하던 역할과 과제를 말합니다. 아이들 학교 이야기, 직장 스트레스, 내 집 마련 같은 생활의 목표들이 그것입니다. 이것들이 대화의 소재이자 함께 고민할 이유였습니다.

    문제는 은퇴와 자녀 독립이 거의 동시에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러 떠나고, 직장도 사라지고, 급하게 해결해야 할 공동의 문제도 줄어듭니다. 그 순간 부부를 연결해 주던 접착제가 한꺼번에 빠져버립니다. 시간이 생긴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 채워 주던 구심점이 사라진 것이 문제입니다.

    실제로 상담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자주 만납니다. 혼자 사는 분이 오히려 삶의 활력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고, 배우자와 함께 사는 분이 더 깊은 외로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통의 목적 없이 그냥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는 연결감이 생기지 않는다는 방증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실태조사](https://www.kihasa.re.kr)에 따르면, 배우자가 있는 노인도 사회적 고립감을 호소하는 비율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함께 산다는 물리적 사실이 외로움을 자동으로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30년을 살아도 서로를 모르는 이유, 연결감의 문제

    수갑으로 연결된 부부


    상담에서 만난 어느 중년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요즘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남편도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3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부부였습니다.

    오래 살았다고 서로를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계속 변합니다. 젊은 시절의 꿈도 바뀌고, 관심사도 바뀌고, 삶에서 의미를 찾는 방식도 바뀝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10년 전, 20년 전의 배우자만 기억한 채 살아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같은 집에 살면서도 낯선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서 연결감이란 단순히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아닙니다. 관계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함께 의미를 나눌 때' 가장 강한 연결감을 경험한다고 설명합니다. 함께 기대하고,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할 무언가가 있을 때 비로소 연결감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아이의 성장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뗐을 때 함께 기뻐하던 그 순간이 부부를 강하게 묶어 줬습니다. 그 역할이 끝난 뒤에도 새로운 연결감의 원천이 필요합니다. 그 준비 없이 은퇴를 맞이하면, 서로가 싫어서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갈 이야기가 없어서 외로워집니다.

    [세계보건기구(WHO) 고령화와 건강에 관한 보고서](https://www.who.int/ageing)에서도 노년기 사회적 연결감이 신체 건강과 인지 기능 유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합니다. 외로움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인생 후반전을 바꾸는 공동 프로젝트 만드는 법


    아이를 키우던 시절에는 분명한 공동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공동 프로젝트란 부부가 함께 에너지를 쏟고, 결과를 나누고, 의미를 공유하는 목표를 말합니다. 육아가 끝났다고 해서 그 구조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은퇴 이후 앞으로의 20년, 30년이 직장 생활 전체보다 더 길 수도 있습니다. 그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공동 프로젝트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활동 자체가 아니라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만들어 가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관계를 회복한 부부들이 공통적으로 한 것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함께 여행 계획 세우기 (목적지보다 계획 과정 자체가 대화를 만든다)
    - 새로운 것 함께 배우기 (요리, 악기, 외국어 - 서로의 서툰 모습을 공유하는 것이 연결감을 높인다)
    - 지역 봉사 활동에 함께 참여하기
    - 건강 관리 루틴 함께 만들기 (아침 산책, 식단 기록 등)

    그리고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배우자에게 궁금해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요즘 가장 즐거운 게 뭐야?", "해보고 싶은 게 있어?", "우리 둘이 함께 해볼 만한 게 있을까?" 같은 질문들이 다시 연결의 다리를 놓기 시작합니다. 대화 기술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궁금해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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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가까이 상담 현장에서 만나온 부부 중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분들은 특별한 비법이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계속해서 서로를 궁금해하고, 함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가던 분들이었습니다. 은퇴를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문장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부담이 아니라 진짜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배우자에게 이렇게 물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우리 앞으로 무엇을 함께 꿈꿔볼까?" 어쩌면 그 질문 하나가 외로움을 연결로 바꾸는 시작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