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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이 말이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면, 지금 부모로서 중요한 신호를 하나 놓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30년 가까이 상담 현장에서 수많은 부모와 아이를 만나왔는데, 가장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이의 행동은 분명히 보이는데, 그 행동의 이유는 끝내 묻지 않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TV 앞 자리 — 시력 문제를 몰랐을 때

    TV를 보는 아이


    제가 상담실에서 만난 한 부모의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TV를 볼 때마다 화면 바로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부모는 처음엔 웃으며 말했고, 두 번째는 단호하게, 세 번째쯤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설명도 했고, 주의도 줬고, 아이도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부모가 내린 결론은 "말을 안 듣는 아이"였습니다. 고집이 세다, 반항한다, 부모 말을 우습게 안다는 해석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그런데 한참 뒤에야 드러난 진짜 이유는 놀라울 만큼 단순했습니다. 아이에게 시력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시력 문제란 단순히 눈이 나쁜 것 이상의 의미입니다. 멀리서는 화면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이 입장에서 앞으로 다가가는 것이 선택 가능한 가장 자연스러운 해결책이었습니다. 말을 안 들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잘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부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저도 그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이 사례에서 주목해야 할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가 반복한 행동(TV 앞으로 다가가기)은 규칙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시력 문제로 인한 생리적 필요였습니다.
    - 부모가 내린 해석(반항, 고집)은 행동의 이유가 아닌 관찰자의 판단이었습니다.
    - 아이도 자신의 시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동의 시력 문제는 생각보다 발견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한안과학회](https://www.ophthalmology.org)에 따르면 취학 전 아동의 시력 검사는 만 3~4세 무렵부터 권고되며, 본인이 불편함을 명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아이의 반복 행동을 훈육 문제로만 접근하기 전에 신체적 원인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차만 타면 잠드는 아이 — 행동 해석이 관계를 갈라놓을 때


    비슷한 사례가 또 있었습니다. 가족 여행을 준비한 부모였습니다. 좋은 풍경도 보여주고 싶었고, 새로운 경험도 하게 해주고 싶어서 오래전부터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차에 타자마자 잠들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내내 자다가 도착할 즈음에야 겨우 눈을 떴습니다.

    부모는 서운했습니다. "이렇게 애써 준비했는데",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었는데", "관심이 없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동 해석입니다. 여기서 행동 해석이란 상대의 행동에 내가 임의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실제 이유를 확인하기 전에 이미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아이가 차에서 잠든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평소 수면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멀미를 예방하기 위해 몸이 자동으로 반응한 것일 수도 있고, 여행 준비 과정에서 이미 많은 에너지를 썼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의 노력을 몰라서 잠든 것이 아닙니다.

    저는 상담 현장에서 이런 행동 해석의 오류가 얼마나 많은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지를 오랫동안 지켜봐 왔습니다. 아이가 대답을 안 하면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배우자가 말을 줄이면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고, 직장 동료가 거리를 두면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해석이 사실과 다를 때가 훨씬 많습니다.

    [미국심리학회(APA)](https://www.apa.org)는 관계 내 갈등의 상당 부분이 의사소통 자체의 부재보다 상대 행동에 대한 잘못된 귀인(attribution), 즉 원인 해석의 오류에서 비롯된다고 보고합니다. 여기서 귀인이란 상대의 행동 원인을 어디에서 찾느냐의 문제로, "저 아이는 원래 말을 안 듣는다"처럼 내면의 성격 탓으로 돌리는 내적 귀인 오류가 특히 관계를 손상시킵니다.

    질문이 먼저다 — 해석 전에 물어야 하는 이유


    저는 30년 가까이 상담을 하면서 관계를 살리는 가장 작지만 강력한 기술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설명도 아니고 설득도 아닙니다. 질문입니다. 그것도 행동을 고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입니다.

    "왜 앞으로 가서 보는 거야?"
    "차만 타면 왜 이렇게 졸리니?"
    "무슨 이유가 있어?"

    이 질문들은 아이를 추궁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행동 뒤에 있는 맥락을 확인하겠다는 태도입니다. 사람들은 상대의 행동 자체보다, 그 행동에 자신이 내린 해석 때문에 상처받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TV 앞으로 다가간 아이는 부모를 무시한 것이 아니었고, 차에서 잠든 아이도 부모의 수고를 몰라서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유를 묻기 전에 의미를 결정해 버리면, 없던 갈등이 생겨납니다.

    질문의 태도를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저는 상담에서 이렇게 권유합니다.

    1. 행동을 보고 즉시 결론 내리는 것을 3초만 미뤄보십시오.
    2. "왜 그랬을까?"를 속으로 한 번만 먼저 물어보십시오.
    3. 아이가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뒤 실제로 물어보십시오.

    이 세 단계는 거창한 기술이 아닙니다. 하지만 습관이 되면 관계의 질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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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부모란 아이의 행동을 가장 빨리 고치는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저는 수많은 부모를 만나며 그 확신이 점점 단단해졌습니다. 아이의 행동 뒤에 있는 이유를 가장 먼저 궁금해하는 사람, 그리고 그 궁금함을 실제로 질문으로 꺼낼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아이와 더 오래, 더 가깝게 있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답을 빨리 찾는 일이 아니라, 조금 더 오래 궁금해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