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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말을 전혀 못 하던 시절, 부모는 오히려 더 잘 통했습니다.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배고픈가 보다", "졸린가 보다" 하고 짐작했고, 그 짐작은 신기할 정도로 정확했습니다. 30년 가까이 상담 현장에서 부모와 자녀를 만나온 저는 이 역설 앞에서 늘 멈추게 됩니다. 의사소통 도구는 분명히 늘어났는데, 왜 마음은 오히려 멀어지는 걸까요.

    우는 아기

     

    아이 울음 통역기가 화제가 됐던 이유


    몇 년 전 '아이 울음 통역기'가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아이 울음 통역기란 아기 울음소리의 진동과 파장을 분석해 배고픔인지, 졸음인지, 기저귀 불편인지를 구분해 알려주는 장치입니다. 기사를 보며 많은 부모들이 웃었는데, 이제 막 육아를 시작하는 신혼부부들은 조금 다른 이유로 웃었습니다. "그런 기계가 왜 필요하지?"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엄마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울음소리만으로도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반응하고, 채워줬습니다. 말 한마디 없어도 영아기에 부모와 아이가 놀라울 정도로 잘 통했던 건 이런 이유였습니다. 저는 상담실에서 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부모님들이 그 시절을 떠올리며 표정이 부드러워지는 걸 직접 봐왔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말을 배우고, 생각을 표현하고, 메신저까지 쓰는 나이가 되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부모들이 오히려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소통 수단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정작 소통은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잔소리가 시작되는 순간 생기는 일


    상담실에서 부모님들을 만나면 이런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왜 저렇게 받아들일까요?" "걱정돼서 말하는 건데 자꾸 잔소리라고 해요." 여기서 잔소리란 단순히 말이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 부모의 생각을 전달받는 경험을 반복할 때 느끼는 감각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진심입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고, 좋은 학교에 가고, 실수 없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어떤 부모가 그 마음이 없겠습니까. 문제는 그 마음이 틀려서가 아닙니다. 그 마음이 커질수록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보다 부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영아기에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궁금해했습니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면 부모는 아이를 설득하려 합니다. 그 순간부터 잔소리가 시작됩니다. 저는 이 전환점을 수많은 상담 사례에서 반복적으로 목격해 왔습니다. 부모가 생각하는 '아이를 위한 말'과 아이가 받아들이는 '잔소리'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https://www.kyci.or.kr)에 따르면 청소년이 부모와의 대화에서 가장 힘들다고 꼽은 유형 1위가 '내 말은 듣지 않고 훈계·설교 위주의 대화'였습니다. 이 수치가 저에게는 낯설지 않습니다. 상담실에서 제가 매일 듣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궁금해하는 마음이 먼저다


    상담실에서 만난 사춘기 아이들의 이야기는 부모들의 예상과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직접 들었습니다.

    - "말해도 어차피 혼날 것 같아요."
    -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기보다 가르치려고 해요."
    - "엄마는 항상 결론부터 말해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이해받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공감적 경청이란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행동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과 맥락을 먼저 받아들이고 나서 반응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아기 때 부모는 이것을 자연스럽게 했습니다. 울음의 이유를 먼저 궁금해했고, 그 이유를 파악한 다음 반응했습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 궁금함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걱정이 앞서면 질문보다 설명이 많아집니다. 그 순간 아이는 마음의 문을 조금씩 닫기 시작합니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 연구팀의 자료](https://psych.snu.ac.kr)에 따르면 사람은 이해받는다고 느낄 때 비로소 조언을 수용할 준비가 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가장 좋은 조언도 잔소리처럼 들린다는 것입니다. 저도 상담 현장에서 같은 걸 수없이 목격해 왔습니다.

    사춘기 자녀와의 소통법에 관한 책과 강의는 많습니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물론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제가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다릅니다. 소통은 기술보다 태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다시 꺼내야 할 오래된 마음


    30년 가까이 상담 현장에서 발견한 것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영아기 소통의 핵심은 '궁금해하는 마음'이었다.
    2. 사춘기가 되면 부모는 궁금함 대신 전달과 설득으로 전환한다.
    3. 아이는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침묵하거나 문을 닫는다.
    4. 소통은 말을 많이 하는 능력이 아니라 상대 마음을 궁금해하는 능력이다.

    사춘기 자녀의 방문이 닫히고, 대답이 짧아지고, 예전처럼 이야기하지 않을 때 부모는 "나를 밀어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런데 상담실에서 제가 직접 들은 아이들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거나, 꺼냈다가 가르침으로 돌아올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쩌면 사춘기 자녀와의 소통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왜 울지?" 하고 물었던 그 마음을 다시 꺼내오는 일, 즉 "왜 그렇게 생각하지?", "무슨 마음일까?" 하고 궁금해하는 태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사춘기 자녀의 침묵 속에도 분명 메시지는 있습니다. 다만 그 언어가 울음에서 침묵으로, 표정으로, 짧은 대답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 마음을 다시 들으려는 순간, 소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다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