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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싸우는 이유가 정말 생각이 달라서일까요, 아니면 다르다는 사실 자체를 못 참아서일까요?"
몇 년 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상한 장면을 하나 봤습니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외국인 방송인이 자국 여성과 한국 여성의 차이를 설명하는 자리였는데, 그가 계속 "틀리다"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진행자가 "다른 거죠?"라고 정정해도, 그는 또 "틀리다"라고 했습니다. 웃기기도 했지만 저는 그 장면에서 뭔가 불편한 걸 느꼈습니다. 한국어를 배운 외국인이 왜 하필 "다르다"보다 "틀리다"를 더 자주 쓰게 됐을까. 혹시 우리가 평소에 그렇게 말하고 살아온 건 아닐까, 하고요.
다름과 틀림 — 예능 장면 하나가 드러낸 언어 습관
저는 그 예능 장면을 본 뒤 한동안 그 생각을 놓지 못했습니다. 언어는 그냥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더 자주 쓰는지는,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반영합니다.
여기서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르다'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않음을 나타내는 중립적 표현이고, '틀리다'는 어느 한쪽에 오류나 잘못이 있다는 판단을 내포합니다. 영어로 치면 "different"와 "wrong"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일상 대화에서 우리는 이 두 단어를 생각보다 자주 혼용합니다.
국립국어원의 어문 규범 안내에 따르면,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맞지 않을 때 쓰는 말이고, 단순히 서로 같지 않음을 나타낼 때는 "다르다"를 써야 합니다.([출처: 국립국어원](https://www.korean.go.kr)) 그런데 현실에서는 "너 생각이 틀렸잖아"라는 말이 "나와 달라서 네가 잘못됐다"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 언어 습관이 무섭다고 느끼는 건, 그것이 관계 속에서 판단의 언어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라면 그래야지", "여자라면 그래야지", "부모라면 당연히", "요즘 젊은것들은 문제야" — 겉으로는 설명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자기 기준과 다른 상대를 틀린 사람으로 규정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상담실에서 이런 언어를 하루에도 여러 번 듣습니다.
갈등 사례 — 책임감과 즐거움, 무엇이 틀렸나

제가 상담했던 한 부부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부부 동반 저녁 모임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남편은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냉장고 몇 번째 칸에 새 반찬이 있는지 설명하고, 숙제는 했는지, 세수는 했는지, 늦게까지 TV를 보지는 않는지 하나하나 확인했습니다. 반면 아내는 여전히 사람들과 웃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귀갓길 차 안에서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남편은 "여자가 가정을 생각하고 아이들을 챙겨야지"라고 했고, 아내는 "남자가 그렇게 쪼잔해서 되겠어?"라고 받아쳤습니다. 며칠 동안 냉전이 이어졌고, 두 분은 결국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상담 중에 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둘 다 완전히 자기 나름의 논리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가정을 챙기는 것이 책임감이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가치관 속에서 자랐습니다. 아내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에너지를 나누는 것이 삶의 기쁨이라는 경험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둘 다 틀리지 않았습니다. 달랐을 뿐입니다.
여기서 '가치관 충돌'이란 단순히 의견이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경험에서 형성된 핵심 신념 체계가 부딪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게 무서운 이유는, 양쪽 모두 진심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국심리학회의 연구에서도 부부갈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가치관 차이를 꼽으며, 단순한 의사소통 훈련보다 차이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https://www.kpsych.or.kr))
그 부부가 싸운 이유는 아내가 아이를 덜 사랑해서도 아니고, 남편이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서도 아니었습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번역하는 순간, 대화가 설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가치관 충돌 — 다름을 인정하는 관계가 오래간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실제로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 저는 상담에서 몇 가지 패턴을 반복해서 봐왔습니다.
가치관 충돌을 해결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된 접근들입니다.
- 판단 전에 맥락 묻기: "왜 그렇게 생각했어?"를 먼저 물으면, 상대의 행동이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 '다르다' 언어로 교체하기: "그건 틀렸어" 대신 "나는 다르게 생각해"로 바꾸면 방어가 줄어듭니다.
- 가치관의 출처 나누기: 각자 왜 그것이 중요한지, 어떤 경험에서 왔는지를 이야기하면 이해의 폭이 넓어집니다.
좋은 관계는 같은 사람들이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도 다르고,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도 다릅니다. 다름은 결함이 아니라 특징입니다. 문제는 상대를 이해하기 전에 평가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저는 상담을 하면서 좋은 부부의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상대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하지만, 그 이유는 이해할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용(acceptance)'입니다. 수용이란 상대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이 존재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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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도 그 예능 장면을 가끔 떠올립니다. 외국인이 "틀리다"를 더 자연스럽게 배운 것은 어쩌면 그가 우리의 말 습관을 가장 정직하게 배운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관계가 무너지는 이유는 다름 때문이 아닙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번역하는 습관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봅니다. 지금 나는 상대를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틀렸다고 판단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