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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도시철도 개찰구를 지나다 보면 맑은 새소리가 납니다. 처음엔 그냥 좋았습니다. 회색 콘크리트와 차가운 기계음 사이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가 도시 한가운데서 만나는 작은 숲처럼 느껴졌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소리가 달리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세히 듣다 보니 유료 승차권을 쓸 때와 무료승차권을 쓸 때 알림음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순간부터 새소리는 더 이상 새소리만이 아니었습니다.

    대전 도시철도 승차권

    개찰구 알림음, 두 종류라는 사실을 아셨나요?


    대전 도시철도를 자주 이용하는 분들도 대부분 그냥 지나칩니다. 저도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관찰하다 보니 패턴이 보였습니다. 유료 승차권을 사용할 때 나는 알림음과, 무료승차권을 사용할 때 나는 알림음이 분명히 달랐습니다.

    여기서 알림음 구분이란, 승차권의 종류에 따라 개찰구 통과 시 서로 다른 소리 신호를 출력하도록 설계된 방식을 말합니다. 운영 측의 입장에서 보면 이유는 충분합니다.

    - 승차권 종류별 통계 산출
    - 무임승차 여부 실시간 확인
    - 시스템 이상 여부 구별

    행정적으로는 합리적인 설계입니다. 문제는 그 소리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들린다는 점입니다. 개찰구를 통과하는 순간, 그 사람이 무료 이용자라는 사실이 소리로 공개됩니다. 시스템은 구별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주변에 신호를 보내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저는 이런 장면에 유독 민감해졌습니다. 행정 편의를 위한 구별이 어느 순간 사람의 정체성처럼 붙어버리는 경우를 현장에서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낙인효과, 따뜻한 외투가 상처가 됐던 이유


    1980년대 초반, 광부들과 공장 노동자들에게 두툼한 겨울 외투가 지급되었습니다. 대통령 하사품이라는 이름으로요. 당시엔 분명 도움이 됐을 겁니다. 겨울은 추웠고,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그 외투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 사람은 광부구나", "저 사람은 공장 직공이구나." 옷은 따뜻했지만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 외투를 입지 않게 됐습니다. 도움을 거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따뜻함보다 존엄을 선택했습니다.

    여기서 낙인효과란, 특정 집단에 속한다는 표시가 개인의 정체성으로 굳어져 그 사람 전체를 규정해 버리는 사회심리적 현상을 말합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이 제시한 개념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상징'이 실제 인간관계와 자존감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복지 현장에서도 핵심 개념으로 다뤄집니다.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복지 낙인 관련 연구](https://www.kihasa.re.kr))

    이 낙인효과는 소리 하나에서도 작동합니다. 무료승차권 이용자가 개찰구를 통과할 때 다른 알림음이 울린다면, 그 순간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황이 노출됩니다. 정보는 짧게 지나가지만, 그 사람이 느끼는 시선의 무게는 오래 남습니다.

    복지 상담 현장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만났습니다. 사람들은 도움을 받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움받는 사람으로만 보일 때, 그때부터 상처가 시작됩니다.

    복지 존엄, 배려는 받는 사람 입장에서 완성됩니다


    좋은 복지를 설계할 때 우리는 주로 한 가지 질문에 집중합니다. "어떻게 더 많이 줄 수 있을까?" 그런데 저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이 질문 하나가 더 필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받는 사람은 어떻게 느낄까?"

    여기서 복지 존엄이란,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때 수혜자의 자존감과 사회적 평등성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원칙을 말합니다. 지원의 양만큼이나 전달 방식이 중요하다는 개념으로,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사회보장협회(ISSA)에서도 복지 서비스의 질 평가 기준 중 하나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처: 국제사회보장협회 ISSA](https://www.issa.int))

    학교에서 번호를 부여하고, 병원에서 차트를 만들고, 복지 서비스에서 대상자를 분류하는 일은 모두 행정을 위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구분이 사람의 정체성이 되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무료 이용자라는 이름 뒤에는 누군가의 부모가 있고, 누군가의 자녀가 있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 자체가 보이지 않을 때 배려는 시혜로 바뀝니다.

    저는 그래서 알림음 하나가 달라질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모든 승차권에 같은 소리를 적용하더라도 내부 시스템에서 구별하는 방법은 충분히 있을 테니까요.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이 왜 사람 편의가 아닌 행정 편의에 맞춰 설계되는지, 그 우선순위가 궁금해집니다.

    지금도 대전 도시철도를 탈 때면 새소리가 들립니다. 여전히 맑고 아름다운 소리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배려는 진짜 상대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편의를 위한 것인가. 선한 의도가 상대의 존엄까지 품고 있을 때, 비로소 도움은 시혜가 아니라 존중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