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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 오히려 주변을 힘들게 만든 적, 있으십니까? 저는 있습니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시절, 저는 톨게이트 검표원들의 일자리를 생각하며 하이패스 단말기를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하이패스 차선이 텅 비어 있고 일반 차선에 긴 줄이 늘어서 있을 때, 저는 그 줄에 서 있으면서 뿌듯함까지 느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진짜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이패스 거부가 알려준 것
저는 당시 사람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이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고, 자동화 확대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검표원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하이패스를 설치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소신 있는 선택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결국 저도 하이패스를 설치하던 날, 이상한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한 걸까?" 검표원들의 삶이 실제로 달라졌을까요? 긴 줄에 서 있던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 진짜 도움이 되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아니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돕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제 신념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불편한 깨달음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습니다.
여기서 신념이란 옳고 그름에 대한 개인의 확신 체계를 말합니다. 신념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신념이 실제 행동의 효과와 분리될 때입니다. 저처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변화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바로 그 경우입니다.
신념이 강요가 되는 순간
상담을 하다 보면 자기 원칙이 분명한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돈도 계획적으로 쓰고, 생활도 절제하는 분들입니다. 곁에서 보면 참 멋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조금 더 가까이 가면 다른 이야기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배우자가 답답해하고, 자녀들이 지쳐 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어려워합니다. 왜 그럴까요? 원칙이 문제인 게 아닙니다. 그 원칙의 적용 범위가 문제입니다.
자신에게 엄격한 기준을 세우는 것은 존중받을 만합니다. 문제는 그 기준을 배우자도, 자녀도, 직원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그 순간 원칙은 강요가 되고, 소신은 통제가 되고, 철학은 압박이 됩니다. 정작 본인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말인데, 듣는 사람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여기서 투사란 자신의 가치관이나 감정을 상대방도 당연히 공유해야 한다고 여기는 심리적 기제를 말합니다. 가족 관계에서 갈등이 반복되는 경우, 이 투사 패턴이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심리상담 분야에서는 원칙주의적 성향과 관계 갈등 사이의 연관성을 주요 상담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상담심리학회](https://www.krcpa.or.kr))
가족이 답답해하는 진짜 이유
"왜 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이 말을 상담 현장에서 정말 자주 듣습니다. 이 말을 하는 쪽은 대부분 원칙주의적인 가족을 둔 배우자나 자녀입니다. 늘 맞춰야 하고,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는 느낌이 반복되면, 사람은 서서히 지칩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자율성 욕구라는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자율성 욕구란 자신의 행동과 선택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는 기본적인 심리적 필요를 말합니다.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이 제안한 자기결정이론에서는 이 자율성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관계 만족도가 크게 낮아진다고 설명합니다.([출처: Self-Determination Theory](https://selfdeterminationtheory.org))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이패스를 거부하던 시절, 저의 신념은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그 신념이 옳다는 확신이 강해질수록,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줄어들었습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이유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같은 선택을 해도 그 이유는 다를 수 있고, 같은 행동을 해도 가치관은 다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다름이 아닙니다. 다름을 허용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관계는 원칙보다 이해로 유지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더 성숙한 사람일까요? 저는 이제 이렇게 생각합니다.
- 자신의 기준은 분명히 갖되, 상대의 기준도 존중할 수 있는 사람
- "나는 이렇게 살지만, 당신은 다른 이유로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
- 상대를 설득하려는 힘보다 상대를 궁금해하는 힘이 더 강한 사람
틀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틀에 갇히지 않는 사람입니다. 원칙이 없는 것보다 원칙만 있는 것이 관계에서는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상담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관계는 정답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해로 유지됩니다. 내가 옳은가를 묻는 것보다, 내가 놓치고 있는 사람은 없는가를 먼저 묻는 쪽이 관계를 더 오래, 더 따뜻하게 만듭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꺼냅니다. 나는 지금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생각을 사랑하고 있는가. 하이패스 앞에서 긴 줄을 기다리며 뿌듯해하던 그때의 저를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그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진심이 곧 올바른 방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 사실을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