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말이 있습니다. 상담 현장에서 가족을 떠나보낸 분들을 만나다 보면, 돈이나 시간이 아닌 단 한마디를 못 했다는 후회가 가장 깊었습니다. "사랑해." "고마워." "덕분이야." 그 짧은 문장이 끝내 전해지지 못한 채 관계가 닫혀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 마음이 없어서 못 한 것이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가족, 다양한 삶

     

    사랑의 언어가 다르면 같은 마음도 다르게 읽힌다


    가족 상담을 하다 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제 마음 알잖아요."

    "굳이 말해야 알아요?"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사랑하는 건 알 텐데요."

    저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조용히 되물어보고 싶어 집니다. 정말로 상대가 알고 있을까요?

    여기서 사랑의 언어란 각자가 사랑을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뜻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5가지 사랑의 언어(Five Love Languages)'로 설명하는데, 크게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신체적 접촉으로 나뉩니다([출처: The 5 Love Languages](https://www.5lovelanguages.com/)). 사람마다 사랑을 주고받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 같은 마음이라도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미 충분히 표현했다고 느낍니다. 가족을 위해 일하고, 필요한 것을 챙기고, 힘들 때 곁에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듣는 사람의 경험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랑을 느끼지 못한 게 아니라, 사랑이 분명하게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원문은 분명히 있었는데 번역본이 전달되지 않은 셈입니다.

    표현이 없을 때 관계에 생기는 오해의 구조


    저는 한 부부를 상담하면서 이 구조를 아주 선명하게 본 적이 있습니다.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월급을 빠짐없이 가져다주었고, 주말에도 가족을 위해 시간을 냈습니다. 스스로는 충분히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상담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받는 느낌이 없어요."

    남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데? 가족을 위해 사는 게 사랑 아닌가요?" 그 말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아내가 사랑을 읽는 방식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원했던 건 생활비가 아니었습니다. 가끔은 그냥 이런 말 한마디였습니다.

    - "고마워."
    - "수고했어."
    - "당신 덕분이야."

    남편은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했고, 아내는 사랑을 언어로 확인하고 싶어 했습니다. 둘 다 사랑하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란 상대의 마음 자체가 없는 게 아니라, 각자의 해석 방식 차이에서 비롯된 단절을 뜻합니다. 실제로 많은 부부 갈등이 사랑의 부재가 아닌 언어의 불일치에서 시작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American Association for Marriage and Family Therapy](https://www.aamft.org/Consumer_Updates/Couples_Therapy.aspx)).

    표현되지 않은 감사는 당연함으로 읽히고,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무관심으로 읽힙니다. 원문은 사랑인데 번역본은 무관심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


    상담실에는 의외로 감사 표현 자체가 낯선 분들이 많습니다. 부모에게 고맙지만 말하지 못하고, 배우자에게 미안하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자녀가 대견하지만 칭찬하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이 너무 커서 어색한 경우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분들, 칭찬보다 지적을 훨씬 많이 들으며 자란 분들, 그분들은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 자체를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서 감사 표현이란 단순한 예의나 형식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는 정서적 신호를 말합니다. 감사를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뇌의 보상 회로를 활성화하고 관계 만족도를 높인다는 연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신호를 보내는 회로 자체가 닫혀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음은 분명히 있는데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감사는 마음속에만 머물고, 사랑은 행동으로만 남습니다. 상대는 그 행동을 보고 해석하는데, 같은 의미로 읽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족일수록 표현을 더 아끼는 역설


    저는 이 지점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표현을 아낍니다.

    직장 동료에게는 "감사합니다"를 말합니다. 식당에서도 "고맙습니다"라고 합니다. 택배 기사님께도 인사를 건넵니다. 그런데 정작 매일 밥을 같이 먹는 가족에게는 하지 않습니다. 너무 가까워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까운 관계일수록 표현이 더 중요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기대가 가장 큰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에게 우리가 바라는 건 이런 것들입니다.

    1.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2. 내가 한 일을 인정받고 싶다
    3. 가끔은 직접 들었으면 한다

    그 기대가 크기 때문에, 표현이 없을 때 상처도 더 깊습니다. "내 마음 알잖아"라는 말의 함정은 여기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은 면죄부처럼 사용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그 말이 오히려 외로움을 확인시키는 문장이 됩니다.

    짧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오래 기다리던 문장일 수 있습니다. "고마워." "수고했어." "덕분이야." 평범하게 들리지만, 그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평생 처음 듣는 문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사랑하는데 꼭 말해야 하냐고 묻는 분들을 만나면, 저는 오히려 이렇게 되묻고 싶습니다. 사랑하는데 왜 말하지 않느냐고요. 사랑은 마음속에만 있을 때 완성되지 않습니다. 전달될 때 비로소 관계 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후회하는 말들이 하나같이 "사랑해, 고마워, 덕분에"인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그 말들은 언제든 할 수 있었는데, 내일 하면 된다고 미루다 결국 하지 못한 것입니다. 원문은 이미 마음속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건 그것을 소리 내어 번역하는 일뿐입니다.